일본의 한국사 말살 과정은 우선 명치유신에 들어가면서 일본문화 속에 한국의 전통과 혼백이 살아있는 가지가지의 유적지를 덮고 파괴한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명치유신이 시작되면서 곧바로 일본에서는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이 내려졌습니다. ‘일본의 신사 안에 있는 한국에서 들어간 불교 사찰을 분리시켜라. 철저히 파괴하라’고 해서 1,600여 개의 불교 사찰을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아주 강력한 증오심으로 파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사카의 유명한 스미요시 신사 안에 있었던 신라사, 그리고 단군조선 이전에 배달국 건국자였던 환웅천황을 모신 히코산의 사찰 영선사도 이때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일제는 한국을 영구히 지배하기 위한 전략을 실행합니다. 첫 번째 전략은 한국인들의 역사, 문화 관련 책을 수거하고 소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제는 한국을 강점한 1910년 직후에 한국인들이 보는 역사책, 각종 문화 서책들을 전부 수거해서, 14개월 만에 20만 권을 남산에서 전부 소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국의 역사뿌리를 말살하는 논리가 나오게 됩니다. 일본 학자들이 수거된 한국 역사책을 보고 ‘한국 역사의 뿌리를 제거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고민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20만 권의 책을 수거해서 불만 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수거한 중요한 역사책들을 보니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고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는 기록과 함께 ‘환인과 환국과 환웅의 배달과 단군의 조선 이야기’를 알게 된 것입니다.
‘환국이 한국역사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이 환국을 제거해야 된다, 조선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해서 역사말살 전담기구를 1922년에 조선총독부 직속으로 편성합니다. 1925년에는 일왕의 특명으로 독립기구로 탄생했는데요 바로 ‘조선사편수회’란 단체입니다. 이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역사 말살을 주도한 3인방이 있었습니다. ‘구로이타 가쓰미黒板勝美,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 이마니시 류今西龍’입니다. 이 3인방이, 처음에 수거된 책 가운데서 『환단고기』를 발견해 읽고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그때 그들이 한국의 시원역사의 말살 전략을 공유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들이 내린 역사 말살의 결론은 역사의 근원인 ‘환국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환국역사 왜곡말살의 논리 근거는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1206~1289) 스님이 환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환국은 제석신의 나라다, 인도의 인드라 신화에 나오는 그런 나라다, 천상의 나라다’는 주석을 붙인 것을 근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마니시 류가 ‘야, 너희들 역사책을 쓴 일연 스님, 그 스님도 신화로 부정했지 않는가. 그래서 나도 그 논리를 추종한다’라고 해서 역사왜곡의 알리바이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조선사편수회 3인방 중 막내인 이마니시 류의 스승이 이미 『삼국유사』 「고조선」을 교정보고 1904년에 책을 편찬했습니다. 자기 스승이 교정을 보고 ‘하자 없다’고 했던 것을 달리 변형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석유환국昔有桓國’,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는 것을 ‘석유환인昔有桓因’, 옛적에 환인이 있었다로 바꿨습니다. 나라 국國 자를 정으로 쪼아서 씨 인因 자로 조작을 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환국-배달-조선은 국가가 아니고, 환인-환웅-단군이라고 하는 신화의 인물들이 만들어 놓은 3대의 역사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나라다’라고 낙인을 찍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민족의 뿌리 역사인 환국과 배달, 조선의 40년 부족한 7천 년 역사(7대 환인의 환국 3,301년, 18대 환웅의 배달 1,565년, 47대 단군의 고조선 2,096년. 도합 6,960년의 뿌리역사)를 완전히 뽑아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민족의 역사는 약 2천백 년 전 중국의 식민지 역사로 시작되었다, 그것에 네놈들 조선 놈들의 역사다’라고 식민사관을 주입시켰습니다.